재난 같은 취업난과 청년들의 고군분투
2019년 7월에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엑시트'는 재난 영화의 긴박감과 사회 풍자 코미디의 유머를 절묘하게 섞은 작품으로, 이상근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첫 장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천만에 가까운 약 942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을 만큼 의미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엑시트에서는 배우 조정석과 임윤아가 주인공을 맡아 위급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유쾌한 모험을 보여줍니다. 몇 년째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취업 문을 넘지 못하고 백수로 살아가던 용남(조정석)은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온 가족을 만나며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던 와중에 칠순 잔치 행사장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의주(임윤아)와 마주치게 되며 내용이 전개됩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산악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두 사람 모두 클라이밍 실력이 탁월했습니다. 오랜만의 재회한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도시에 유독가스가 퍼지고 긴급 재난 상황이 되면서 영화는 탈출 액션 코미디의 본색을 드러냅니다. 용남과 의주가 과거 산악 동아리에서 날고 기던 실력으로 재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긴장감이 가득합니다. 동시에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아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주인공인 점, 그리고 대학 시절의 영광을 끄집어내며 혼돈의 도시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통해 동아리 경험까지 짜내야 아수라장의 취업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냉혹한 현대 사회 취업난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어 쓴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사회 풍자 유머와 긴장감 넘치는 액션
영화 엑시트는 재난 영화이지만 코미디를 가미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안전장치 하나 없이 고층 건물 외벽을 타는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숨을 참게 할 만큼 극적인 긴장감을 주고, 외벽을 타는 장면을 연기한 배우들의 실감 나는 액션도 극의 몰입도를 키웠습니다. 이렇게 재난 영화의 액션을 선보이는 동시에 사회 풍자 역시 놓치지 않았습니다. 취업도 아르바이트도 녹록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 갑작스러운 재난을 만나 그동안 갈고 닦고 쌓아온 모든 기술과 능력을 총동원해 위기를 타파해 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청년층의 현실과 고뇌를 엿볼 수 있습니다. 현실의 취업난이 영화 속 재난과 일맥상통하며, 주인공들이 고군분투하며 재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들을 통해서 현대 사회를 살며 취업하고 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청년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주인공들의 모험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씁쓸하지만 응원하고 싶고, 응원은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하지만 결국은 유쾌하게 마무리되는 영화 엑시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는 청년들을 응원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 풍자 유머와 함께 긴장감 넘치는 액션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볍지만 재밌는 코미디 재난 영화
영화 엑시트는 실제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이 직접 와이어를 활용한 액션을 소화하기도 하며 CG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작품인 만큼 관객들에게도 생생한 현실감이 전달되었습니다. 더불어 한국 재난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기존 재난 영화들이 삭막하고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것과 대조되게, 엑시트에서는 유쾌한 코미디와 산뜻하고 익살맞은 연기가 영화의 개성을 살리면서 독보적인 한국형 재난 영화의 2막을 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재난 영화임에도 재난의 원흉이었던 유독가스의 탄생과 문제 해결 방식이 일차원적이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여기에 더불어 유독가스를 퍼뜨려 재난을 일으킨 빌런이 부실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빌런의 비중과 무게를 고려했을 때도, 갈등적 요소의 관점에서도 다소 빈약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와 연출은 오히려 사회 풍자 코미디 영화로서의 엑시트를 더욱 돋보이게 했습니다. 영웅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 그것도 오랫동안 취업 못 한 백수가, 눈앞에 닥친 위기를 현실적이면서 긴장감 넘치게 맞닥뜨리고 해결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미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웃음을 챙겨 가벼운 듯하면서도 극의 마지막까지 긴박한 즐거움을 내려놓지 않으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코미디 재난 영화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