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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언덕 독립 영화, 그 시절 우리 이야기

by 모든 것이 알고 싶다 2025. 3. 14.

비밀의언덕

독립 영화는 재미없다는 편견을 깨다

2023년에 개봉한 영화 '비밀의 언덕'은 초등학교 5학년 '명은이'가 가족의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점점 더 높아지는 비밀의 언덕을 넘으며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약 1.6만 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언뜻 보면 적다고 할 수 있지만 독립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업 영화의 100만 관객에 맞먹는 성적을 거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비밀의 언덕'은 독립 영화가 깊이를 챙기는 과정에서 재미 요소를 놓치기 쉽다는 편견을 깬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는 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를 남기면서도 흥미진진한 전개로 관객의 몰입과 흥미까지 챙겼습니다. 여기에 영화 후반부를 지나 결말을 맞이했을 때 깊게 남는 여운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독립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96년입니다. 바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정 환경 조사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학급 아이들이 모두 있는 교실에서 한 명씩 선생님과 면담을 하던 시절입니다. 다시 말해 가족 관계와 부모님의 직업까지 같은 반 아이들에게 강제로 공개하게 됐던 시대입니다.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맞은 이지은 감독은 이런 '가정 환경 조사서'에 대한 영화를 꼭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의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된 지금, '비밀의 언덕'은 어른들이 쉽게 지나쳤던 아이들의 섬세하고 순수한 감성을 다시 경험하게 도와줍니다.

 

다시 새겨 보는 가족의 의미

아빠는 하는 일 없이 돈 쓰기만 좋아하고, 엄마는 시장에서 젓갈 장사를 하며 늘 가족 험담만 합니다. 한 살 터울의 오빠는 도움이 되지도 않습니다. 5학년 명은이는 이런 가정 환경 속에서 가족에 대한 물음표를 던집니다. 가정 환경 조사가 있기 전, 명은이는 선생님에게 줄 선물을 세심하고 신중하게 골라 포장까지 야무지게 합니다. 그리고 선물과 함께 드릴 편지를 정성껏 씁니다. 편지 내용은 가정 환경 조사를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대신, 연구실에서 선생님과 학생들이 일대일로 진행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담았습니다. 그렇게 공들여 준비한 편지와 선물을 선생님 책상에 올려두었지만, 지각이 습관인 담임선생님이 그날도 늦는 바람에 미처 명은이의 편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가정 조사가 시작됩니다. 자기 차례가 오자 명은이는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아빠는 회사원, 엄마는 평범한 가정주부라는 거짓말을 해버립니다. 그렇게 명은이의 비밀이 알을 깨고 태어나 조금씩 자라날 때마다 명은이는 당돌하고 맹랑하게 거짓말의 산을 넘으며 위기를 헤쳐갑니다. 그도 그럴 것이, 관심 받고 주목 받기 좋아하는 여느 또래의 아이들처럼 명은이도 어른들과 친구들의 사랑이 필요한 어린이입니다. 하지만 반장으로 뽑혀 신나게 집으로 돌아온 명은이에게 그런 건 여유 있는 엄마들이나 하는 거라며 무르라고 하는 엄마, 많은 아이들 중에 어쩌다 네가 반장이 됐냐는 듯이 묻는 아빠는 알게 모르게 명은이에게 상처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가족들의 '보기'가 있는 것 같지만 우리 가족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는 '명은이'. 영화는 명은이를 둘러싼 환경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가족의 정체를 숨기고 싶고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빠져들게 합니다.

 

그 시절 우리들의 부끄러움, 그리고 솔직함

명은이는 반장으로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다정하게 챙기며 명랑하고 똑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심하면서도 당찬 명은이는 감수성과 글재주도 남달라 글쓰기에 큰 두각을 나타냅니다. 가족의 존재로부터 느낀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글짓기로 대신 채우며 승화하는 것이 명은이의 희망이자 탈출구입니다. 그러나 명은이보다 글을 잘 쓰는 전학생이 등장하며 명은이의 세계는 또 한 번 위기를 맞이합니다. 더군다나 전학생은 명은이와 달리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는 법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시기와 질투, 그리고 더 멋진 글을 쓰겠다는 경쟁심과 야망이 명은이를 뒤덮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글을 쓰고 또 쓰며 글짓기 대회를 준비하던 명은이와 달리 전학생은 1시간 만에 더 높은 상을 받을 만큼 대단한 글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그 비법은 바로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전해 들은 명은이는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여러 글짓기 주제를 거쳐, 가장 큰 대회의 주제 '가족' 앞에서 명은이는 결심합니다. 혼자 간직하는 일기처럼 아주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적어 보겠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술술 써 내려간 글은 고백이자 폭로의 형태로 완성됩니다. 과연 명은이는 부끄러움과 솔직함 사이에 저울을 두고 어떤 선택을 내릴지,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린 시절을 겹쳐 보며 명은이의 마음에 폭 빠질 수 있었습니다. '비밀의 언덕'은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솔직함과 비밀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선사합니다.